학교는 법정이 아니다: ‘소송의 시대’를 넘어 ‘교육의 시대’로
[교육 현장의 사법화 현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변호사가 대동하고, 교실 안의 갈등이 경찰서로 직행하는 시대다. 20~3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이 풍경은, 이제 학교가 더 이상 교육적 자정 능력을 갖춘 '작은 사회'가 아니라, 법리적 다툼만이 존재하는 '소송의 장'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쩌다 아이들에게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 대신 '증거 확보'와 '법적 대응'을 먼저 가르치게 되었는가.
[과거의 경험 - 불합리한 권위와 저항, 그리고 화해] 나 역시 학창 시절, 교사의 권위에 상처받은 기억이 선명하다. 초등학생 시절,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던 날이 있었다. 사과도, 진실 규명도 없이 지나간 그 날의 기억은 권위의 폭력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과도한 체벌에 맞서 관계 기관(신문고)에 직접 호소하며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였다. 격앙된 감정이 가라앉은 뒤,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대화했고 선생님 역시 나의 공포와 입장을 이해해주셨다. 비록 그 선생님은 전출을 가셨지만, 훗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인생의 조언을 나누는 사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는 분명 고통이 있었지만, 동시에 문제를 직면하고, 부딪치고, 끝내 화해하는 '인간적인 성장의 과정'이 있었다.
[현재의 문제 - 시스템의 역설과 배움의 실종] 학교폭력위원회의 도입 취지는 이러한 불합리한 폭력을 막고 공정한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었을 테다. 나 또한 객관적인 기구가 자정 작용을 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학폭위는 변호사들의 새로운 시장이 되었고, 교사들은 교육적 지도를 포기한 채 법률 용어와 민원 사이에서 고사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갈등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친구와 다투면 대화로 풀기보다, 누가 더 법적으로 유리한지를 따진다. 학원 강사는 무서워해도 학교 교사는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아이들, 학원이 지식 기술을 가르칠지는 몰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갈등 해결 능력을 가르칠 수는 없다.
[미래 학교의 제언 - 교육적 권위의 회복과 '작은 사회'의 복원]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갈등을 회피하고 곧바로 고소·고발 버튼을 누르는 사회인가,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로 매듭을 푸는 지혜로운 사회인가. 미래의 학교는 다시금 '작은 사회'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교사에게 '가르칠 권리'와 '훈육의 재량권'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아동학대 처벌법의 남용을 막고, 교사가 교육적 소신을 가지고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도록 면책권을 부여해야 한다. 교사가 심판자가 아닌 교육자로서 기능할 때, 교실은 법정이 아닌 배움터가 된다.
둘째, 학생들에게 '갈등을 경험할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 외부(경찰, 변호사)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학교 내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사과하며 화해하는 과정을 의무화해야 한다. 법적 처벌보다 교육적 성찰이 우선시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학창 시절, 억울함과 체벌 속에서도 결국 '선생님'이라는 존재와 화해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공간이 완벽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인간 냄새 나는 교육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고소·고발의 시대'는 결국 공멸이다. 이제 변호사를 학교 밖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다시 선생님과 학생을 마주 앉혀야 한다. 그것이 교권을 바로 세우고, 우리 아이들을 건강한 시민으로 길러내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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